
캐릭터 분석
드라마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를 꼽자면 단연 ‘등장인물’들의 개성 넘치는 특징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진주, 이은정, 황한주 이 세 명의 친구들이 워낙 입체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보는 내내 우리 주변에 꼭 한 명은 있을 법 한데?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임진주(천우희)는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 지망생입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사랑에 빠지면 머리끝까지 빠지는 스타일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생계 고민도 많은 캐릭터입니다. 천우희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귀여운 연기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서 진주를 보면서 저랑도 좀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은정(전여빈)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가장 이성적이고 프로페셔널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불안과 외로움을 가장 많이 안고 있는, 좀 더 깊이 알고 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인물입니다. 커리어와 연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여빈의 차분한 연기가 은정의 복잡한 내면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황한주(한지은)는 싱글맘으로, 밝고 당당하지만 속으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사회적 시선과 경제적 압박을 견디고 있습니다. 세 친구 중에서 가장 강해 보이면서도 가장 여린 부분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남주들도 꽤나 매력적입니다. 손범수(안재홍)의 능글맞아 보이지만 일과 연애에는 진심을 다하는 캐릭터, 이효봉(윤지온)의 뼈 속까지 차가운 듯 따뜻한 매력, 추재훈(공명)의 든든함까지. 세 친구의 우정 케미와 함께 상대역으로 맡은 남자 인물들도 드라마의 주요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공감 포인트
이제 막 30대 중반으로 들어선 저로서는 드라마를 보면서 ‘서른인데 아직 꿈을 꾸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등장인물들이 너무나도 공감되었습니다. 사랑, 일, 우정에서 오는 현실적인 고민들은 아마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계속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을 계속 가도 괜찮은 건지, 더 늦기 전에 방향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등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임진주는 원하는 글을 쓰고 싶지만 생계 때문에 타협해야 하는 순간, 이은정은 커리어를 위해 연애를 미루거나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순간, 황한주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만의 삶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까지. 이 모든 것이 과장되지 않고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다소 걱정되는 고민들이 떠올라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심각한 일들도 해학적이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기 때문에 끊임없이 웃었던 것 같습니다. 큰 악역 없이 그리 무겁지도, 또 너무 가볍지도 않게 여겨질 수 있게끔 이야기를 잘 풀어가 편안하게 시청했습니다. “인생 뭐 있어, 그냥 살아”라는 메시지가 은근히 강하게 전달되면서도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는 점이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30대가 되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비교의 함정’,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이제는 안 늦었을까’ 하는 불안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 <멜로가 체질>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로맨스나 달달한 멜로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지만, 진짜 서른 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웃기면서도 눈물 나게 하고 공감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독특한 연출
드라마의 연출, 극본을 맡은 이병헌 감독은 그가 제작한 <스물>, <극한직업> 등의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코미디 감각이 매우 뛰어난 감독입니다. 그래서인지 코미디와 멜로의 조화가 매우 자연스럽고 기존 로코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연출이 <멜로가 체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독특하면서도 재치 있다고 생각된 부분은 바로 제작 협찬사 광고 노출입니다. 요즘 드라마나 예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억지스러운 PPL이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웃음 포인트가 됩니다. 협찬 제품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이게 PPL이야”라고 살짝 비틀어 표현하는 장면들이 정말 기발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PPL을 메타적으로 다루는 방식이 매우 신선하고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재미를 더해줍니다.
또 다른 특징은 4th wall breaking(제4의 벽 깨기) 연출입니다. 등장인물이 가끔 시청자를 직접 바라보며 말하거나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어서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런 연출이 코미디적인 타이밍과 잘 맞물리면서 드라마의 독특한 맛을 좀 더 극대화해 주었습니다.
대사도 굉장히 날카롭고 현실적입니다. 과도하게 멜로스럽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는 제대로 감정을 건드리는 대사들이 많아서 몰입감이 뛰어났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이병헌 감독 특유의 연출을 만나 기억에 오래 남는 드라마가 된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준비하던 방송이 무마되는 좌절도 맛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등 가슴 아픈 일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영화가 천만을 돌파하는 예상치 못한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고 하룻밤의 우연으로 영원한 인연을 맺을 수도 있습니다. 뜻밖의 행복이 찾아와 체질에도 맞지 않던 일들이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지치고 힘듦에도 불구하고 하루 더 살아볼 의지를 실어주는 드라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