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지금 온도의 계절이 올 때마다 생각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엄마친구아들>입니다. 어름인 듯, 아닌 듯 한 색감의 영상미가 마음을 일렁이게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평소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 드라마는 단순한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인생의 성장통을 겪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려내어 깊은 몰입감을 선사했습니다. 드라마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미국에서 소위 '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승승장구하던 주인공 배석류(정소민)가 돌연 백수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던 그녀가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고 파혼까지 선언하며 고향 집으로 컴백하자, 평화롭던 동네는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배석류의 흑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말 그대로 '엄마 친구 아들'인 최승효(정해인)가 있었습니다. 최승효는 현재 건축계를 주목하게 만든 촉망받는 젊은 건축가로, 외모부터 성격, 능력까지 모든 것이 완벽한 그야말로 현실판 엄친아의 정석 같은 인물입니다. 두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자란(?) 사이는 아니지만, 어린 시절 목욕탕도 같이 다녔을 만큼 서로의 못나고 부끄러운 과거를 속속들이 공유한 소꿉친구입니다. 석류가 인생의 거대한 암초를 만나 방황하는 동안, 승효는 투덜거리면서도 늘 그녀의 곁을 지키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드라마는 두 사람이 재회한 이후 티격태격하는 유쾌한 일상 속에서, 서로에게 감추어 두었던 오랜 감정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쫓아갑니다. 단순히 "나 너 좋아해"로 끝나는 일차원적인 로맨스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서로를 통해 치유해 나가는 서사가 중심을 이룹니다. 석류가 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았는지, 그리고 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비밀이 풀릴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두 사람의 부모님들이 보여주는 현실적인 가족들의 에피소드와 혜릉동이라는 정겨운 동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웃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더해져 극의 풍성함을 한층 더해줍니다. 오랜만에 자극적인 요소 없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따뜻해지는 웰메이드 드라마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인물 분석
<엄마친구아들>가 확 이끌리는 이유는 단연 생동감 넘치고 입체적인 캐릭터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정해인 배우가 연기한 '최승효'는 겉보기에는 완벽한 스펙을 자랑하는 차가운 도시 남자 같지만, 속은 누구보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인물입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석류를 남몰래 좋아해 왔지만, 소중한 친구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아 오랜 시간 자신의 마음을 꽁꽁 숨겨왔습니다. 정해인 특유의 맑고 선한 눈빛이 승효라는 캐릭터의 순애보적인 면모를 200% 살려냈다고 봅니다. 석류를 바라볼 때의 그 애틋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시선은 드라마를 보는 내내 심장을 간질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완벽해 보이는 승효 역시 부모님의 불화와 부재로 인해 마음 한구석에 깊은 외로움을 품고 살아왔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캐릭터의 깊이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습니다.
반면 정소민 배우가 맡은 '배석류'는 K-장녀의 표상과도 같은 인물이라 제 모습을 보는 듯한 순간이 많았습니다. 언제나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1등 만을 달려왔던 그녀가 번아웃과 뜻하지 않은 시련을 겪으며 무너지는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정소민 배우는 석류의 씩씩하고 털털한 모습 뒤에 숨겨진 연약함과 고독을 정말 현실감 있게 연기해 냈습니다. 억지로 밝은 척을 하다가도 서러움이 폭발해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에서는 저 역시 깊은 감정 이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이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발산하는 케미스트리입니다. 만나기만 하면 초등학생처럼 유치하게 싸우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를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가 되어주는 관계성이 핵심입니다. 서로의 약점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약점을 가장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설정이 두 캐릭터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주연 배우들뿐만 아니라 서브 커플인 정모음(김지은)과 강단호(윤지온)의 풋풋하고 진솔한 사랑 이야기, 그리고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준 명품 조연들의 연기까지 어느 하나 구멍 없는 완벽한 캐릭터 플레이가 돋보였습니다.
솔직 후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로코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인생 드라마 중 하나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초반부의 유쾌하고 통통 튀는 분위기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의 감정선이 깊어지며 묵직한 위로를 건네는 전개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혜릉동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주는 따스함에 매료되었고 자극적이고 피폐한 장르물이 넘쳐나는 요즘 시대에 오랜만에 마음 편히 웃고 울며 힐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크게 들었던 개인적인 생각은 격한 '부러움'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어릴 적에 이토록 친하게 지내거나 허물없이 지냈던 엄마 친구 아들이 전혀 없었습니다. 드라마 속 승효와 석류처럼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모든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나의 가장 못난 모습까지도 스스럼없이 보여줄 수 있는 이성 친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나에게도 저런 정해인 같은 엄친아가 한 명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릅니다. 학창 시절에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고, 힘들 때 동네 놀이터에서 캔맥주 하나 나눠 마시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훈훈한 남사친이 있었다면 제 학창 시절과 20대가 조금은 더 다채롭고 즐겁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현실의 엄마 친구 아들은 대개 비교 대상이 되어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이거나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요. 하지만 <엄마친구아들>은 그런 현실적인 클리셰를 판타지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인간적인 감성으로 풀어내어 대리 만족시켜 주었습니다. 청춘들의 방황을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해 주고, 잊고 지냈던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일깨워준 고마운 작품입니다. 마음이 지치고 위로가 필요할 때, 혹은 가슴 설레는 로맨스에 푹 빠져보고 싶을 때 언제든 다시 꺼내보고 싶은 드라마로 제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