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법이라는 단어가 참 멀고도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변호사 사무실 문턱을 넘는 것 자체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저 역시 예전에 자잘한 사기 피해를 보고 법적인 조언을 구하려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임료 앞바다에서 좌절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습니다. 돈 없으면 법의 보호도 못 받는 건가... 서글픈 생각이 들던 그때, 제 마음을 완벽하게 대변하며 통쾌한 위로를 건네준 드라마가 바로 SBS <천원짜리 변호사>였습니다.
줄거리
드라마는 화려한 선글라스와 체크무늬 수트를 입고 다방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이상한 변호사, 천지훈(남궁민)의 등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화려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과 달리, 빽도 없고 돈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단돈 천 원짜리 지폐 한 장만 받고 사건을 수임합니다. 처음에 저는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천 원이 말이 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천 원이라는 액수가 가진 무거운 가치가 드러나게 됩니다. 천지훈은 과거 전형적인 엘리트 검사였지만 거대 기업의 비리와 권력의 압박 속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고 법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 아픔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검사라는 안정적인 자리를 버리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려 천 원을 받기 시작한 것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절망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겠다는 다짐이자 세상에 대한 외침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천지훈이 시보 변호사 백마리(김지은), 그리고 든든한 조력자인 사무장(박진우)과 함께 일명 '천백사 트리오'를 결성해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흥미진진하게 그려냅니다. 경비원 갑질 사건부터 중고차 허위매물 사기, 그리고 연인의 죽음과 얽혀 있는 거대 빌런 JQ그룹과의 최종 검은 커넥션까지, 천지훈은 법전 속의 빽빽한 글자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기발하고 상상 초월인 방법으로 사건을 타파해 나갑니다. 뻔한 법정 드라마의 클리셰를 깨부수며 매회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라인이었습니다.
추천 포인트
<천원짜리 변호사>가 제 인생 드라마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뉴스 사회면에서나 볼 법한 우리 이웃들의 아픈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마다 정면으로 다루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에피소드는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원 아저씨의 이야기였습니다. 대기업 전무라는 직함을 가진 남자가 자신의 차량을 대신 주차하다 경미한 접촉사고를 낸 경비원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퍼붓고 고액의 수리비를 청구하는 장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 문화'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천지훈은 여기서 법으로만 맞서지 않고 똑같이 돈과 권력으로 찍어 누르려는 갑의 논리를 역이용해 통쾌한 앙갚음을 선사합니다. 사회적 약자가 당하는 서러움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위로한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또 하나 깊은 공감을 자아냈던 에피소드는 서민들의 피땀 어린 돈을 갈취하는 '중고차 허위매물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극 중 사무장이 당한 이 사기는 실제로도 많은 사회 초년생이나 서민들이 겪는 현실적인 범죄입니다. 드라마는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피해자들을 오히려 협박하는 사기 조직의 대담함을 보여주며, 법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천지훈이 중고차 딜러로 직접 위장 잠입해 사기꾼들의 대가리를 깨부수는 장면은 오락적인 재미를 넘어, 국가와 법이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민생 범죄의 심각성을 꼬집는 훌륭한 사회비판이었습니다. 거대 권력인 JQ그룹과의 싸움 역시 법조계와 대기업의 정경유착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들며, 힘없는 자들이 법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를 에피소드마다 아주 밀도 높게 고발해 냈습니다.
사회비판 요소
제가 생각하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무기는 무거운 사회문제를 결코 무겁게만 다루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만약 이 드라마가 시종일관 진지하고 어두운 톤으로 사회의 부조리만 고발했다면 현실에 지친 저는 보다가 피로감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천원짜리 변호사>는 시종일관 유쾌하고 능청스러운 코미디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남궁민 배우의 엉뚱하면서도 킹 받는 연기는 정말 독보적이었는데 상대방의 기를 쏙 빼놓는 현란한 말재주와 뻔뻔한 표정은 극의 긴장감을 순식간에 해소하는 청량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도박장에 잠입해 '천고니'로 변신해 판을 뒤흔들거나, 합의금을 깎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장면들은 배를 잡고 웃게 만들었습니다.
진짜 대단한 것은 이렇게 한바탕 웃고 난 뒤에 찾아오는 묵직한 여운이었습니다. 가벼운 코미디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활짝 열어놓은 뒤, 그 틈새로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 "법은 당신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따뜻한 휴머니즘 메시지를 툭 던집니다. 웃기면서도 눈물이 나고, 통쾌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는 완벽한 감정의 완급 조절이 돋보였습니다. 화려한 법률 용어를 남발하며 잘난 척하는 변호사가 아니라, 의뢰인의 상처받은 마음을 진심으로 듣고 '마음까지 변호해 주는' 천지훈의 모습은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유쾌한 웃음과 가슴 따뜻한 위로, 그리고 통쾌한 사이다 액션까지 모두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이 드라마를 제 이름을 걸고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에 담긴 인간미에 여러분도 분명 매료되실 겁니다.